편집자주
불과 100년전에는 마취제도 진통제도 항생제도 없었다. 위생과 청결에 대한 개념도 없던 무지의 시절에도 어떻게든 생명을 살리려 애썼던 의사들은 있었다. 그런 의사들과 환자들이 벌인 질병과의 투쟁 역사를 소개한다.
고대부터 인류를 위협한 탄저균
일제, 북한 등 살상 무기로 활용
백신 있지만, 번거로운 접종문제

2001년 11월 미국 메릴랜드주 미 육군 산하 포트 데트릭 생물의학연구소에서 한 연구원이 민주당 상원 법사위원장인 패트릭 리히 의원에게 온 탄저균 편지를 공개하고 있다. 편지에는 9·11 테러가 발생한 날짜와 함께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 알라는 위대하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FBI 홈페이지 캡처
지난 12일 한미 장병 500여 명이 카메라가 장착된 보행로봇 등 첨단 장비를 동원,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제거 훈련을 벌여 언론 주목을 받았다. 한미가 북한 WMD의 핵심인 탄저균의 위협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줬다. 사실 탄저병은 미국에서는 손쉬운 테러 무기로 알려진 지 오래다. 9·11 테러 직후인 2001년 10월 미국을 ‘백색 공포’로 몰아 넣었던 ‘탄저균 우편물 연쇄 테러’가 대표적이다. 워낙 갑작스럽고 강렬했기에 ‘최근 등장한 병’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그 역사는 상당히 깊다.
탄저병은 '탄저균'이라는 세균에 의해 발병하는 병으로, 인수공통 감염병이다. 탄저병에 걸린 동물과 접촉했거나 그 동물의 고기를 섭취했을 때 전염되기도 하지만, 토양에 있던 균에 의해 감염되기도 한다. 토양에서도 수십 년 이상 생존할 수 있다고 하니, 생존력이 대단한 셈이다.
감염은 세 가지 유형이다. 피부 상처를 통해 들어오면 피부 탄저병(접촉), 흡입해서 걸리면 폐 탄저병(흡입), 고기를 먹고 감염되면 위장관 탄저병(섭취)이다. 세 가지 모두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치명적이다. 특히 주로 테러에 따른 경로인 폐 탄저병은 감기 정도로 시작하지만, 갑자기 악화되면서 청색증(피부와 점막이 푸른색을 나타내는 증상)과 흉막 삼출(폐 흉막에서 체액 성분이 나오는 증상)이 발생하고, 종격동(오른쪽 폐와 왼쪽 폐 사이의 폐, 심장, 대동맥이 모인 부위) 출혈까지 일으킨다. 치료하지 않으면 90%, 치료해도 10%가 사망할 정도로 위험한 질환이다.

성경에 묘사된 탄저병
탄저병은 과연 얼마나 오래됐을까?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도, 성경에서도 이 탄저병을 찾을 수 있다. 모세의 출애굽과 관련된 10가지 재앙이 그것이다. 다섯 번째 재앙인 가축 돌림병이 말, 소, 낙타, 소같이 발굽 있는 동물에게 주로 발생한 것으로 볼 때 탄저병으로 보인다는 의견이 있다. 로마의 시에서도 묘사된다. ‘한때 그곳에서 끔찍한 전염병이 생겨나 가을의 따뜻한 시기(초가을)에 맹위를 떨치며 온갖 종류의 동물을 죽였습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루이 파스퇴르. 한국일보 자료사진
18세기에는 노예 노동으로 번성한 미국 루이지애나 등지의 목장에서 본격적으로 보건·의학적 문제를 일으킨다. 주로 피부 탄저병이었는데, 이때는 탄저균을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동물의 털 등을 조심해야 한다’는 식의 경고에 머물렀다. 양모를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 발생했기 때문에 양모 분류자 병’이라고도 불렸다. 그러다 19세기 후반에야 탄저균을 확인하게 되고 프랑스 생화학자 루이 파스퇴르(1822~1895)가 1881년 최초로 백신을 개발해 동물에게 사용했다.
이미 치료용 백신도 확실히 개발된 탄저병이 계속 안보 위협 요인으로 머물고 있는 건 바로 전쟁 무기화됐기 때문이다. 탄저균은 흙 속에 살아 구하기도, 배양하기도 쉽다. 제조 비용도 저렴하며 고급 기술력이 필요하지도 않다. 안정성도 높아 기압 분무기 등을 이용해 대량 살포도 가능하며, 감염된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데 필요한 탄저균의 양도 그리 많지 않다.
실전 사용 기록도 충분하다. 일본제국의 제731부대가 탄저균으로 중국인 수천 명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미국은 이 기록을 획득하고, 탄저균 실험을 이어가다가 1969년에 중단했다. 1972년부터 생물무기금지협약(BWC·1975년 발효)을 추진했지만 냉전 상태였기 때문에 잘 지켜지지 않았다. 실제로 구소련이 무너진 후, 당시 소련에서 탄저균 연구가 진행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79년 구소련의 스베르들롭스크에서 무기화된 탄저균을 연구하다가 실수로 균이 방출돼 77명에게 노출됐고, 무려 68명이 사망했다. 앞서 소개한 2001년 미국 테러에서는 우편물을 이용한 탄저균 테러로 11명이 감염돼 5명이 사망했다.
이런 위험성 때문에 군인 등 탄저균 노출 위험이 높은 직군에는 백신이 접종되고 있다. 다만, 민간인은 백신을 맞지 않는데, 백신을 5번이나 맞아야 하고 또 매년 맞아야 한다는 번거로움도 한몫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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