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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위한 위원회인가

입력
2025.03.20 16:00
수정
2025.03.20 17:01
26면
2 0

양자전략위원회에 밀린 양자 연구진
바이오 정부 위원회 3개나 필요한가
혁신하겠다는 거버넌스 이래도 되나

편집자주

과학 연구나 과학계 이슈의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일들을 과학의 눈으로 분석하는 칼럼 ‘사이언스 톡’이 3주에 한 번씩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최상목(맨 오른쪽)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유상임(오른쪽 두 번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함께 12일 오후 대전 유성구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양자전략위원회 출범식 시작 전 관계자에게 양자컴퓨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기재부 제공

최상목(맨 오른쪽)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유상임(오른쪽 두 번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함께 12일 오후 대전 유성구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양자전략위원회 출범식 시작 전 관계자에게 양자컴퓨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기재부 제공

미래 산업 게임체인저로 주목받는 양자기술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미국, 중국, 유럽보다 뒤처졌다는 건 속상하지만 인정한다. 그래도 독자 양자기술을 확보하려고 고군분투하는 과학자들이 여전히 있다는 사실에 희망을 얻는다. 지난 12일 있었던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양자컴퓨터 시연을 기다린 이유는 이 때문이다.

20큐비트라 외국보다 성능이 떨어지긴 하지만, 국산 양자기술이 꾸준히 업그레이드되는 모습을 독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한국일보는 시연 일정을 수시로 문의하며 취재를 이어왔다. 이번엔 외부와 연결하는 네트워크도 구축해 다른 연구자들에게 양자컴퓨팅 환경을 공유할 수 있게 된 만큼 국내 연구 현장에 미치는 영향 측면에서도 시연의 의미가 적지 않았다. 표준연은 해당 기술을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백브리핑 자리도 마련하기로 했다.

그런데 시연 이틀 전 백브리핑이 돌연 취소됐다. 그 배경엔 같은 날 출범이 예고된 양자전략위원회가 있었다. 양자기술 시연보다 양자전략위 출범이 더 돋보여야 한다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표준연에 신신당부를 했다고 한다. 기술보다 위원회를 더 신경 쓰라는 일종의 ‘홍보 가이드라인’을 준 거나 다름없다. 현장 취재도 과기정통부 대신 기획재정부 출입기자 일부에게만 허용됐다. 양자전략위 위원장이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라서다.

당일 행사에선 정부 의도대로 연구진보다 최 대행이 돋보였다. 그 많은 역할 와중에 직접 현장을 찾고 양자기술 거버넌스를 확립한 건 고무적이다. 하지만 연구비가 삭감되며 홀대받는 상황에서도 양자기술을 끌어올리려고 부단히 애썼을 과학자들의 노고는 뒤로 밀렸다. 돋보이겠다던 양자전략위가 들고나온 ‘전략’은 1년 전 정부가 이미 발표한 퀀텀 이니셔티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누구를 위한 행사이고 위원회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첨단기술을 대하는 정부의 고루한 방식은 바이오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올 1월 ‘민관 원팀으로 역량을 총결집해 드넓은 가능성의 신대륙’을 열겠다며 범부처 거버넌스를 표방한 국가바이오위원회가 닻을 올렸다. 불과 1년여 전인 2023년 12월 범정부 거버넌스이자 민간 합동 컨트롤타워라 자임하며 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가 가동됐는데 말이다.

두 위원회의 위원장은 최 대행, 한덕수 국무총리가 각각 맡았지만, 핵심 인재 11만 명 양성, 의사과학자 육성, 연구개발 혁신, 규제 발굴과 개선,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등 하겠다는 일들이 상당 부분 겹친다. 국가바이오위는 1,000만 건, 바이오헬스혁신위는 100만 명의 빅데이터를 구축하겠다는데 같은 건지 다른 건지 모호하다. 국가바이오위가 만들겠다는 생성형AI 의료기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은 출범 다음 날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간했다. 바이오 전용 GPU를 3,000장 이상 확보하겠다는데, 공급이 달리는 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연내 GPU 1만 장 확보를 내세운 국가AI위원회와 구매 경쟁을 해야 할 판이다.

숫자와 수사가 가득한 위원회 자료에 이름을 올린 민간위원들은 50~60대 교수나 유명 기업 수장이 대다수다. 심지어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도 바이오특별위원회가 있는데, 세 위원회의 민간위원을 합치면 50명에 이른다. 혁신 없이도 먹고살 수 있는 기득권층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굳이 옥상옥으로 둬야 하는지 의문이다. 양자기술과 첨단바이오를 키울 주인공은 현장의 젊은 과학자와 엔지니어다. 이들을 돋보이게 해도 모자랄 시기에, 여전히 고위 관료 중심의 ‘보여주기’와 옥상옥 거버넌스가 반복되고 있다.

임소형 미래기술탐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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