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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 은퇴 수순이던 국회의장직, '달빛 월담' 우원식엔 끝 아닌 시작?

2024.12.21 08:00
이번 계엄 국면에서 가장 조명을 받은 정치인을 꼽으라면 단연 우원식 국회의장이 될 것 같습니다. 평소 국회의장은 본회의 진행이나 여야 중재를 제외하곤 크게 주목을 받기 어려운 자리이지만, 계엄령에 맞서 국회를 지켜내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 가결을 이끌어내기까지 우 의장의 리더십이 돋보였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실제로 최근 한 여론조사에선 우 의장이 유력 대선주자들을 제치고 '정치인 신뢰도 1위'를 차지하면서 뜨거운 관심도를 입증했습니다. 이에 우 의장의 대선 출마 가능성마저 거론되고 있습니다. 정세균 전 의장을 제외한 역대 모든 국회의장이 임기 종료와 함께 정계를 은퇴한 탓에, 그간 국회의장직은 '정계 은퇴 무대'로도 인식됐습니다. 하지만 계엄 정국에서 맹활약하자 우 의장에 대한 '역대급' 관심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과연 우 의장을 계기로 의장직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새 역사를 쓸 수 있을까요. 우 의장은 3일 밤 계엄령 선포 직후부터 차분히 중심을 지켜왔습니다. 당시 우 의장은 "국회의원이 있는 모든 곳이 국회"라며 곧장 본회의를 열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우왕좌왕하고 있던 의원들을 본회의장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이후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자, 당장 계엄령 해제 의결을 해야 한다 재촉하는 의원들에게는 절차를 지키자 강조했습니다. 비록 정부의 계엄령 선포가 위법했더라도 국회는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려 애쓰는 모습이 모두 생중계되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계기가 됐습니다. 수습 국면으로 넘어가면서부터는 존재감이 더욱 빛났습니다. 계엄령 해제를 위해 올해 만 67세인 국회의장이 담을 넘으면서까지 국회로 달려온 사진이 공개되자, 국민들은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열광했습니다. '국가 의전서열 2위'임에도 국회 구내식당 김밥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개량한복을 입은 채 의장실에서 먹고 자며 열흘간 국회를 지켰던 모습은 우 의장의 진정성을 전달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리더십도 돋보였습니다. 우 의장이 제안한 '12·3 비상계엄 사태 국정조사'는 단호한 결단력을 엿볼 수 있던 사례였습니다. 우 의장은 국회 차원의 종합적인 진상 규명 파악 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지난 11일 여야에 국정조사를 먼저 제안했습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의 공개적 증언이 꼭 필요하다"고 밝히며 정부를 압박했습니다. 이후 국민의힘이 국조에 미온적으로 나오자, 우 의장은 재차 시한을 못 박으면서 강행 의사까지 내보였습니다. 우 의장이 맨 '연두색 넥타이'에 담긴 사연도 주목받았습니다. 우 의장이 주요 표결 때마다 항상 착용했던 넥타이는 '민주화 운동의 대부' 고(故)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의 유품으로 알려졌습니다. 우 의장은 지난 4일 페이스북에 "이 넥타이는 제가 큰 결정을 해야 할 때 꼭 매던 것"이라며 "넥타이를 맬 때마다 저는 속으로 '김근태 형님 꼭 도와주세요!'라고 속으로 부탁과 다짐을 하곤 했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우 의장은 지난 14일 탄핵소추안이 의결된 직후엔 "취소된 송년회를 다시 잡으시라"며 국민들을 위로하고 고생한 국회 직원들과 보좌진, 취재진에게 커피를 돌리는 등 그의 따뜻한 면모도 조명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우 의장의 행보에 민심도 반응하고 있습니다. 한국갤럽이 지난 10~12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 응답률 15.8%), 우 의장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56%로 집계됐습니다.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41%)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15%)는 물론,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된 한덕수 국무총리(21%)보다도 높은 수치를 기록하면서 신뢰도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의장 당선 직후와 비교해본다면, 계엄 사태가 우 의장에 대한 여론을 확실히 뒤바꾼 모습입니다. 우 의장은 당내 경선에서 당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추미애 의원을 꺾는 대이변을 썼지만, 2만 명 이상의 당원의 연쇄 탈당이 이뤄지면서 임기 초반만 하더라도 입지가 좁았습니다. 이로 인해 여야 사이에 끼여 진땀을 빼는 모습이 자주 연출됐습니다. 이후 독립유공자 후손인 우 의장이 광복절 행사 불참으로 한 차례 존재감을 보였고, 이번 국면으로 완전히 입지가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정작 우 의장 측은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신뢰도 1위 결과에 대해서도 우 의장은 오히려 "국민들에게 신뢰받지 못한 국회가 신뢰받게 됐다"고 주변에 얘기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우 의장은 19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도 "개인에 대한 평가보다는, 비상 계엄을 두시간 반만에 해제시킨 의원들과 국회를 도와주신 시민들, 국회 직원들과 보좌진들 모두에게 드리는 국민들의 관심"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대권 도전 가능성에도 단호히 일축했습니다. 우 의장은 대선 출마 의향을 묻는 외신 기자의 질문에 "치열한 선거를 치러서 국회의장이 됐는데, 제 임기는 26년 5월 30일까지"라며 "대선 도전은 아직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최근 우 의장이 군 부대나 한국은행을 찾는 등 맹활약하는 데 대해서도 의장실은 "행정부 공백 상황에서 입법부라도 민생과 국정을 챙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만 설명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차기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이미 정세균 전 의장이 임기 종료 이후에 국무총리를 지내고 대권까지 도전하며 활발히 활동한 선례가 있는 만큼, 우 의장으로선 첫 사례가 되는 부담도 없는 상황입니다. 끝없이 변화하는 상황에 빗댄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이 이번에도 유효할지 주목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기에 앞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얘기가 새는 것 같다"고 주변에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계획보다 계엄 선포 시점이 앞당겨졌다고 볼 만한 정황이다. 내란 주도와 실행 세력이 은밀하게 계엄을 모의하면서도 정작 결행할 타이밍은 쫓기듯 잡은 셈이다. 19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김 전 장관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당일인 3일 오후 주변에 "얘기가 새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이후 국방부에서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부르고, '계엄 사령관 3인방'(방첩사령관·특수전사령관·수방사령관)에게 연락했다. 다만 김 전 장관의 말을 전해 들은 주변인들은 어떤 정보가 샌다는 의미인지 알지 못했지만 어디로 샜는지에 대해서는 야당이라고 해석했다. 이후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윤 대통령이 이날 오후 7시 서울 삼청동 안가에서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 김 전 장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계엄 당시 계엄사령관) 등을 차례로 불러들였다고 한다. 이후 박 총장은 김 전 장관의 지시에 따라 9시 40분 장관대기실에서 대기했다. 특히 박 총장은 당일 서울 태릉 육군사관학교 교장 이·취임식에 참석했다가 이후 충남 계룡대로 내려가지 않고 오후 4시쯤 국방부로 이동해 김 전 장관에게 네 가지 종류의 현안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박 총장은 충남 계룡대 육군참모본부에 있던 핵심 장군 4명도 서울로 불러들였다. 김 전 장관과 여러 차례 교류한 경험이 있는 한 예비역 장교는 "지난해부터 군 내 기밀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내부에서 나왔다"며 "비상계엄 당일엔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과 김도균 전 수도방위사령관 등 예비역 장성 14인이 시국선언을 했는데, 김 전 장관에게는 그게 시그널이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김 최고위원을 비롯한 예비역 장성들은 앞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윤 대통령이 무책임하게 국정을 운영하고 국민을 향한 폭력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며 더는 묵과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당시 오찬에서 김 전 장관이 "탱크로 밀어버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윤석열 내란 진상조사단'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용현은 12월 3일 11시 40분 국방컨벤션센터 오찬에서 '국회가 국방예산으로 장난질인데, 탱크로 확 밀어버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고 밝혔다. 비상계엄이 계획과는 달리 급하게 추진됐다는 정황은 다른 곳에서도 확인된다. 김 전 장관의 측근이자 계엄 포고령 초안 작성과 선관위 서버 탈취 작전을 구상한 것으로 알려진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당초 계엄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꾸리려고 했지만, 시간 부족으로 실제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복수의 군 소식통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 2, 3일 ①육군사관학교 출신에 ②소장급이며 ③영남 출신의 장성들을 모아 TF를 구성하려고 한다고 주변에 알렸다. 하지만 갑자기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되는 바람에 TF가 미처 만들어지지 못했다. 또한 계엄군으로 동원됐던 부대들은 비상계엄 선포 일주일 전부터 예정됐던 정기 훈련 및 일정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축소됐다. 특히 계엄 선포 당일(3일)에는 국방부가 12월 중순까지 잡혀 있던 훈련 일정들을 갑자기 취소하면서 대신 비상대기 지시를 각 부대에 하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군 관계자는 "당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소문이 부대 안팎에서 퍼지고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