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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책상에서 만든 정책, 더는 필요 없다

입력
2025.02.18 04:30
26면
1 0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난 13일 고 김하늘양의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대전 서구 한 초등학교에서 한 학생이 생전 김양이 좋아하던 아이돌 가수 장원영의 포토 카드를 담벼락에 붙이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지난 13일 고 김하늘양의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대전 서구 한 초등학교에서 한 학생이 생전 김양이 좋아하던 아이돌 가수 장원영의 포토 카드를 담벼락에 붙이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우리집 아이가 느닷없이 물었을 때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전 초등학교에서 사건이 있었다는데 무슨 일이었느냐"는 질문이었다. 또래인 김하늘(8)양이 당한 참극에 대해 어렴풋이 들은 모양이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1학년생을' '피습해' '숨졌다'. 한 문장을 구성하는 그 어떤 단어도 말하기 어려웠다. 학교 가길 좋아하는 아이가 마음에 품고 있을 기본적 믿음을 무너뜨릴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학교는 안전하다' '선생님 말씀은 잘 따라야 한다' 같은 믿음 말이다.

지난 10일 저녁, 비극이 전해진 후 우리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교사들도 상심하긴 마찬가지였다. 취재 과정에서 인터뷰한 교사들은 "오늘도, 내일도 교단에 서야 하는데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거나 "20년 이상 일하며 느꼈던 자부심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느낌"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학교 현장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교사가 학생을 살해한 건 매우 극단적인 사건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위험 교사'가 학교에서 언제든 난동 부릴 수 있다는 염려는 이미 많은 학교 구성원들이 해왔다고 한다. 그럼에도 내부 문제를 밖으로 알리길 꺼리는 학교 특유의 문화나 '괜히 교육당국에 보고했다가 보복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탓에 쉬쉬해왔다는 게 교사들의 전언이다. 초교 교감을 지낸 한 교사는 "또 다른 비극을 막으려면 지금이라도 위험 교사 문제를 공론화해야 한다"고 했다. 교사들도 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느낀다는 얘기다.

다만 정부와 정치권이 속도전하듯 대책을 쏟아내는 분위기는 우려된다. 하늘양 아버지는 "제2의 하늘이가 나오지 않도록 도와달라"며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이 당부가 제대로 실현되려면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주요 대책으로 거론되는 '위험 교사의 강제 휴·면직' 제도는 이미 있다. 17개 시도교육청 중 13곳이 질환교원심의위원회를 통해 교육감 직권으로 직무 수행이 어려운 교사를 휴·면직시킬 수 있다. 다만 이 제도는 거의 활용되지 못했다. 학교장이 총대를 메고 위험 교사를 교육당국에 신고해야 하는데 앙갚음 등을 우려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우울증 등에 꼬리표를 붙이면 교사들이 진료를 꺼리게 될 것이라는 걱정도 나온다.

대증적 처방이 아닌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공무원과 정치인들이 학생, 교사, 학부모 등 현장의 이야기를 치열하게 들어봐야 한다. 장관 등이 요식행위로 간담회 몇 번 한 뒤 의견을 수렴했다며 사실상 책상에서 만든 정책을 내놓는 일을 이번만큼은 피해야 한다. 공무원들이 한때 자주하던 건배사가 있다.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회식 자리에서 의기투합할 때만 하는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된다.

유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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