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카페의 마지막 인사
공간 잃은 단골가게 빈자리
경기 불황에 사라진 휴식처

소비심리가 얼어붙으며 카페 등을 운영하는 소상공인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2월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 폐업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았다. 그것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동안 저희 매장을 아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코로나 때도 잘 버텨왔는데 최근 경제 상황이 어려워 부득이하게 폐업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큰돈은 벌지 못했지만 매장을 편하게 이용해 주시는 여러분을 보며 보람을 느꼈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저희도 행복했습니다.'
얼마 전 집 앞 단골 카페가 폐업하며 문 앞에 붙여 놓은 폐업 안내문 내용이다. 큰돈은 벌지 못했다는 대목에서 손님을 향한 서운함이 느껴진 건 자격지심 때문일까? 하지만 내가 몇 번 더 방문해 커피 한 잔 더 했다고 한들 무엇이 달라졌겠는가.
남들에게 폐업한 매장을 설명할 때 '단골 카페'라는 친근한 표현으로 말하곤 했지만 사실 방문 빈도가 높지는 않았다. 간혹 업무가 집까지 이어질 경우 좀 더 집중하기 위해 노트북을 챙겨 들고 카페를 찾았을 뿐이다. 카페라고 하기에는 버젓한 내부 공간은 없었고 커피맛도 특출나지 않았다. 과거 언젠가 번화가도 아닌데 동네 한 귀퉁이에 불쑥 차려진 카페를 보며 얼마나 오래 운영될까 싶었지만 예상은 빗나가고 매장은 10년 넘게 운영됐다.
집 근처이다 보니 혼자 집중할 시간이 필요할 땐 언제나 자연스레 발걸음은 그곳을 향했다. 본의 아니게 용무가 길어져 오랜 시간 푹 꺼진 소파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도 싫은 소리 한마디 안 하던 주인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장은 손님 커피잔을 주시하다 잔의 바닥이 보이면 무심한 듯 커피 서버를 들고 와 리필 커피를 따라주곤 했다. 카페 안에는 항상 잔잔한 음악이 흘렀고 잔잔함 사이로 '또깍또깍' 노트북 키보드 타이핑 소리만 수다스럽게 섞여 들렸다. 그 소음마저도 방해받지 않으려고 이어폰을 끼고 책을 보는 사람도 있었고 노트북으로 웹서핑을 하는 사람, 과제를 하는 학생 등이 마치 카페 장식품이 된 양 하나 둘 소파 위에 조용히 자리했다. 혼자 왔든 여럿이 왔든 카페 안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아무도 서로에게 말하지 않았다. 비슷한 취향의 동네 이웃들이 하나 둘 모여 만들어낸 별난 분위기의 공간이다. 카페를 나설 때면 오래 머무른 것에 대한 답례로 주인장 성격 같은 멋스럽지도 맛깔나지도 않은 쿠키를 몇 개 집어 같이 계산하며 감사함을 표하곤 했다.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던, 출석 도장 찍듯이 모아온 커피 쿠폰은 너덜너덜하다 못해 이젠 가루가 돼버렸고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던 공간은 사라졌다. 너무 익숙해 굳이 애정의 정도를 따지지 않았었지만 카페에 대한 애정은 빈자리를 가득 메운 공허함의 크기로 그 정도를 가늠하게 됐다. 단골가게라 부를 만했다.
대체할 만한 공간을 찾으러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오랜만에 둘러본 동네에는 폐업과 임대 문의를 알리는 현수막 등이 부쩍 늘어 있었다. 폐점 후 오랫동안 방치돼 우편물 등이 수북이 쌓인 곳과 문을 닫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내부 집기와 인테리어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도 눈에 띄었다.
코로나19 팬데믹만 끝나면 경기가 나아질 것이라며 버텨오던 동네 자영업자들이 연이어 찾아온 고물가·고환율·고금리 여파, 불안정한 정국의 풍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하나 둘 쓰러지고 있다. 누군가의 소중한 공간 단골가게들이 그렇게 사라져 간다. 익숙한 것들과 이별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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