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와 종전 논의 통화서 인수 제안
현재 러시아 점령… 적극 반환 협상 유인
광물 협정 전제 조건… 채굴에 전기 필요
에너지·인프라 공습 30일 중단 휴전 합의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워싱턴 백악관을 찾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환영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종전을 중재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장 큰 원자력발전소를 자국에 넘기라고 우크라이나에 제안했다. 미국이 소유한 시설이라면 러시아라도 공격할 엄두를 못 내리리라는 게 트럼프 대통령 논리다. 전후 우크라이나 광물 확보를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감히 누가 미국을 건드리겠나
트럼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전화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방안을 의논했다. 두 정상이 각각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해당 통화 사실을 알렸고,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과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공동 성명으로 주요 논의 내용을 소개했다.
성명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전력 공급망과 원전도 이날 의제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전력 및 유틸리티(공공 서비스) 전문성을 활용해 우크라이나가 원전을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말했다. 루비오 장관과 왈츠 보좌관은 “미국이 원전을 소유하는 게 해당 원전 보호 및 우크라이나 에너지 인프라(기반시설) 지원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원전 소유권을 넘기라는 뜻이다.
이는 우크라이나와의 광물 협정 때 미국이 내세운 논리와 흡사하다. 투자를 받아 경제적 이해관계로 미국을 엮으면 저절로 안전 보장이 된다는 게 미국 측 주장이었고, 그 저변에는 감히 누가 미국을 건드리겠느냐는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검토 대상은 2022년 침공 직후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남동부 자포리자 원전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트럼프 대통령과 자포리자 원전에 대해서만 대화했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우크라이나가 원전을 돌려받는다면 미국이 원전 현대화 및 투자에 참여하는 식으로 소유권을 갖는 방안을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피력했다고 밝혔다. 소유권은 미국이 러시아와의 반환 협상에 적극 개입하게 만들 유인이 될 수 있다.
미국이 자포리자 원전을 탐내는 것은 광물 협정 체결의 전제 조건이라서다. 광물을 채굴·가공하려면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필요한데 우크라이나는 물론 유럽에서도 규모가 가장 큰 자포리자 원전이 이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게 미국 뉴욕타임스의 분석이다. 우크라이나 측은 11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린 미국과의 고위급 회담에서도 우크라이나가 자포리자 원전을 돌려받지 못하면 미국이 원하는 광물 확보가 어렵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정보 주지 마” 푸틴 요구 거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왼쪽 사진부터)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종전을 중재 중이다. AFP 연합뉴스
전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30일간 전쟁 당사자인 두 나라가 에너지·인프라 공습을 중단하는 '부분 휴전' 방안에 합의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의 동의도 이끌어 냈다. 이에 따라 양측 팀이 며칠 내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만나 휴전 범위를 에너지에서 흑해 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라고 루비오 장관과 왈츠 보좌관이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회견에서 이번 부분 휴전 대상에 포함될 시설 목록을 작성하는 등 휴전 이행에 필요한 실무 절차에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일단 휴전 대상 범위에 이견이 있다. 상대적으로 우세한 러시아는 에너지 인프라에 국한하려 하는 반면 우크라이나는 철도와 항만 등 인프라 전반이 포괄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크라이나가 점령 중인 러시아 쿠르스크의 전황은 휴전 확대의 걸림돌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회견에서 “푸틴은 우리 군대가 쿠르스크에 있는 한 (전면) 휴전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젤렌스키 두 정상은 양측 국방 담당자가 정보를 긴밀히 공유한다는 데에도 합의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 방어를 위한 (미국의) 정보 공유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과 정보 공유를 중단해 달라는 전날 푸틴 대통령 요구를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한 셈이다.
이 밖에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방공 시스템(패트리엇 미사일) 제공 요청을 사실상 수락했고, 전쟁 중 러시아에 납치되거나 실종된 어린이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통화는 1시간가량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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