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에 ‘야구 티켓’ 보낸 트럼프
미국 전통적 동맹구도 개편 일환일지도
북·미 밀착 현실화 대응책 고민해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후 북한을 향한 발언이 심상치 않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유세에서 “나는 북한 김정은과 잘 지냈다. 내가 대통령이었을 때 절대 위험하지 않았다. 잘 지내는 일은 좋은 일이지 나쁜 일이 아니다”라며 대북한 정책이 유화적으로 변할 것임을 예고했다. 또 과거 김 위원장과 회담에서 “긴장 풀고, 야구 경기나 보러 가자고 했다”고 김 위원장을 미국에 초대했으며, 여전히 그 초대는 유효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게다가 “우리는 뉴욕 양키스나 (유세 지역인) 미시간에서 홈 개막전을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여 대통령에 당선되면 직후인 내년 봄 미국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이라고 시기도 암시했다. 그는 18일 대통령 후보 지명 전당대회 연설에서도 “김정은과 잘 지냈고, 핵무기를 많이 가진 자와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듯한 말을 던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외정책 틀이 첫 번째 임기 때보다 훨씬 정돈됐다는 평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 마지막 안보 보좌관이자, 그가 당선되면 중용될 것이 유력한 로버트 C. 오브라이언은 최근 미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힘을 통한 평화의 귀환’이라는 제목으로 트럼프 새 행정부의 외교 정책을 소개하는 글을 기고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바이든 정부의 외교는 말만 번지르르한 반면 트럼프 1기 외교는 ‘힘을 통한 평화’ 원칙을 지키며 중국 등 미국 적들의 도전을 억제해 왔으며, 그 원칙을 차기 정부에서도 고수할 것이라는 선언이다. 그가 설정한 미국의 적은 중국과 ‘중국의 주니어 파트너’로 약해진 러시아, 그리고 이란으로 이어지는 ‘반미 독재국가’ 축이다. 그밖에 멕시코 마약 카르텔과 베네수엘라도 미국에 적대적 국가로 거론되는데 그 명단에 북한이 빠져 있다. 오히려 “북한은 (트럼프 정부 때) 미국이 외교적 노력과 군사적 무력시위를 동시에 진행함에 따라 핵무기 실험을 중단했다”며 트럼프 외교의 성공 사례로 등장한다.
오브라이언의 글에서 주목되는 또 다른 점은 클린턴, 조지 W 부시, 오바마, 바이든으로 이어져 온 동맹 개념을 뒤흔든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워싱턴 주류 외교 정책 집단을 만족시키기 위한 ‘트럼프 독트린’ 같은 걸 공표한 적이 없다. 그는 도그마보다 자신의 직감을 따랐고 최근 수십 년간 지배해온 국제주의적 정통 외교 교리보다 더 뿌리 깊은 미국의 오랜 전통적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한다. 트럼프가 내년 백악관에 입주한다면 한국을 비롯한 세계는 ‘트럼프의 직감’에 주목해야만 한다.
트럼프 외교의 최우선 목표는 1990년대 소련 해체 후 미국의 최대 적으로 성장한 중국 제압이다. 이를 위해 미국의 외교 경제 군사 역량을 집중하고, 동맹을 재편하려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중국-러시아-이란’ 반미 동맹 축에서 북한을 제외한 것은 적의 대오를 약화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을 반미 동맹에서 이탈시킬 수 있다면 그 대가로 ‘핵보유국 인정’도 불가능한 거래가 아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안보 불안 증가는 ‘부수적 피해’가 될지 모른다. “트럼프 집권 1기에도 한국을 위협하는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는 사실상 미국이 묵인했다”는 보도도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상황이 급박하게 전환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 외교는 ‘자유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의 블록화’라는 신냉전 구도와 이에 대응하는 ‘가치 외교’에만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트럼프 1기 때 이뤄진 트럼프·김정은 두 차례 정상회담은 한국 정부가 적극적 중재자 역할을 했다. 하지만 내년 봄 트럼프와 김정은이 나란히 미국 야구장에 앉아 얘기를 나눈다면, 그때 과연 한국은 어디에 앉아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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