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적 제도의 모범국에서
자유 박탈된 '선거민주주의'
3개월 새 성장률 0.6%p 하락

스웨덴 예테보리대학 산하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V-Dem)가 최근 발표한 ‘민주주의 보고서 2025’ 캡처.
작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다론 아제모을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한 국가의 번영과 정부의 성공은 제도에 달려 있다고 분석한다.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한가’라는 경제·사회적 질문의 답을 ‘어떤 제도를 선택하고 있느냐’에서 찾은 것이다. 정치·경제 제도가 포용적이면 지속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반면 착취적일 경우 국가는 가난하고 국민은 도탄에 빠진다는 사실을, 두 석학은 고증을 통해 파헤친다.
이들에 따르면 착취적 경제제도는 한 계층의 소득과 부를 착취해 다른 계층의 배를 불리기 위해 고안된 제도다. 이에 배치되는 포용적 경제제도는 ‘사유재산이 확고히 보장되고, 법 체제가 공평무사하게 시행되며, 누구에게나 공평한 경쟁 환경을 보장하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다.
이 같은 경제제도는 정치제도에 의해 결정된다. 사회 전반에 권력을 고루 분배하고 견제하는 다원주의와 ‘합법적 폭력 사용을 독점’하는 중앙집권화가 동시에 이뤄지는 제도가 포용적 정치제도다. 법의 지배, 사유재산 보호, 질서 유지, 견제와 균형이 가능한 사회다. 반면 다원주의와 중앙집권화 중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착취적 정치제도가 된다. 일당·일인 독재에 사유재산은 불허되며, 폭압 정치가 이뤄진다. 두 석학은 포용과 착취 제도의 극단적 사례로 한반도를 꼽았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독재와 폐쇄적 공산주의라는 제도적 차이는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남한과 아프리카 빈국 수준인 북한을 갈라놓은 결정적 열쇠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포용적 제도를 갖춘 모범국가 한국은 더 이상 포용적이지 않다는 국제적 평가에 맞닥뜨렸다. 스웨덴 예테보리대학 산하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V-Dem)는 최근 발표한 ‘민주주의 보고서 2025’에서 한국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독재화되고 있는’ 나라로 진단했다. 이 기관은 전 세계 179개 국가를 △자유민주주의 △선거민주주의 △선거 독재체제 △폐쇄된 독재체제로 분류하는데, 지난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판단했던 한국을 올해는 ‘선거민주주의’ 나라로 강등시켰다. ‘복수 정당제에 의한 자유·공정 선거가 치러지고 만족할 만한 참정권과 표현·결사의 자유가 보장’은 되지만, ‘행정부에 대한 사법·입법적 통제, 시민적 자유 보호, 법 앞의 평등은 후퇴했다'고 판단했다.
독점한 폭력을 오직 가족 보호와 반대 세력 제거를 위해 위헌·위법적으로 사용하고, 70년 이상 '날'이 기준이던 구속기간 산정법이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에게만 '시간'으로 적용돼 석방되는 '법의 예외'를 보면 강등은 사필귀정이다. 그 누구보다 자유민주주의를 외쳐댄 인물이 ‘자유’를 삭제한 장본인이라는 점은 이율배반이다.
두 석학은 "착취적 정치제도는 필연적으로 착취적 경제제도와 공존하며, 권력을 가진 소수 엘리트층의 이익만 대변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면에서 계엄이라는 극단적 착취 행위가 똬리를 틀기 전 해제돼 경제 포용성이 훼손되지 않았다는 데 안도한다. 그럼에도 파장은 거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12월 2.1%에서 1.5%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계엄·탄핵 여파가 처음 반영된 것으로, 석 달 만에 0.6%포인트나 낮춘 것이다. 관세 폭탄의 파고는 더 높을 것이다. 자유 회복과 경제 부흥을 위한 정치 정상화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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