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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폭스뉴스 토크쇼 '폭스앤프렌즈' 진행자들이 지난 5일 공개된 영상에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가자지구 점령' 구상을 비판한 다른 언론 매체들의 보도를 지적하며 웃고 있다. 폭스 영상 캡처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뒤 폭스뉴스를 챙겨본다. 얼마 전 만난 미국 전문가로부터 '마가(트럼프 지지 그룹) 세계관'을 실감하는 가장 좋은 창구라는 추천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 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가자지구 점령" 폭탄 발언 뒤 폭스뉴스 영상을 한참 찾아본 것도 이런 시도의 발로였다. 굵직한 국제법 최소 10개는 어길 법한 터무니없는 발언을 마가는 어떻게 소화하나.
많은 반응을 얻었던 영상 제목은 "토크쇼 진행자들이 언론의 트럼프 가자 구상 비판에 폭소하다"였다. 트럼프 충성파 패널들이 가자 점령 구상을 비판한 다른 언론 매체를 비웃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인종청소' 가능성을 우려한 보도를 "피해망상"이라고 조롱했고, 가자지구에 '가자라고(가자지구와 트럼프의 마러라고 자택 합성어)'가 들어서니 좋은 것 아니냐고 농담했다.
이 섬뜩한 영상은 팔레스타인 인권 같은 건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마가의 민낯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10분 넘는 대화에서 패널들은 가자 주민들의 추방과 미래를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다. 한 패널은 "나 같아도 가자에서는 안 살고 싶다"고 말했지만, '자연 재해로 폐허가 된 미국 영토에서 대량 추방을 용인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건 다르다. 미국은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나와는 상관없는 '그들'의 이야기이니 마음껏 매도할 수 있었던 것일 테다.
이 같은 낙인과 배제는 다른 집단 관련 논란에도 시종일관 적용됐다. 폭스뉴스는 성소수자 표적 정책에 공포감을 호소하는 트랜스젠더들을 "정신이상자의 과잉 반응"이라고 비난했고 대대적 추방이 시작된 이주민은 "살인자, 성범죄자, 아동 납치범 집단"이라고 매도했다. 추방된 불법 이민자 절반가량은 어떤 범법 이력도 없다는 지적은 다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배제의 칼날은 결국 돌아온다. 배제의 정치는 끊임없이 희생양을 찾는 반면 사람마다 '소수자성'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미 트럼프 주요 지지층인 농민, 재향군인, 제조업 노동자들은 지난 13일 트럼프 행정부의 연방 공무원 대량 해고 여파로 생계를 위협받기 시작했다. 그간 정부가 제공했던 공공 서비스가 사라진 탓이다. 이주민 추방에 환호했던 이들은 이제 "배신 당했다"고 후회하지만 이 분노 역시 웃어 넘겨질 공산이 크다.
한국에서도 대통령과 여당, 극우 세력이 정치적 반대자를 '반국가 친중 세력'으로 몰아가는 요즘. 한국도 트럼프 대통령처럼 '터프하게' 반중 세력을 처단하면 좋겠다는 댓글을 심심찮게 본다. 자신들이 표적 삼은 집단을 배제하기 위해서는 불법 계엄이라는 극단적 폭력도 용인할 수 있다는 윤석열 대통령 및 국민의힘 태도에 동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무자비한 낙인 찍기 칼날이 자신을 향하진 않을지 한번쯤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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